세브란스병원이 이달 말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첫 중입자치료에 돌입한다. 지난해 4월 전립선암을 시작으로 췌장암과 간암으로 적용 범위를 넓힌 데 이어 폐암까지 정복하겠다는 계획이다. 폐암의 경우 자각 증상이 없어 환자들의 상당수가 말기에 진단받는 경우가 많다. 이번 중입자치료 도입으로 낮은 생존율에 좌절한 폐암 환자들에게 희망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 연세암병원은 오는 25일 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중입자치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번 치료에 사용될 회전형 치료기는 암 발생 위치 등에 맞춰 조사 각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어 다른 장기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고정형 치료기와 달리, 회전형 치료기는 빛을 내리쬐는 부분이 360도 돌아가 다양한 각도에서 치료가 가능하다.
세브란스는 현재 고정형 치료기 1대와 회전형 치료기 2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단일기관 기준 전 세계 유일하다. 이를 통해 세브란스는 일평균 5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다. 중입자치료 1회 비용은 약 6000만~7500만원이다. 지난달 31일 기준 총 277명의 환자가 중입자치료를 받았다.
김경환 세브란스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고정형 치료기는 조사 각도 등을 조절하는 데 제한이 있지만, 회전형 치료기는 각도뿐 아니라 최적의 선량을 맞출 수 있어 예후 개선과 치료 가능한 환자 범위를 늘려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암 치료법과의 시너지 창출을 위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폐암은 자각 증상이 없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 전체 환자의 60%가 말기 상태에서 첫 진단을 받으며, 암세포 전이가 쉽게 일어나 중증환자가 많다. 또, 많은 폐암 환자들이 만성 폐쇄성 폐 질환, 간질성 폐 질환 등 기저질환을 동반하고 있어 수술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중입자치료는 무거운 탄소 입자를 활용하여 체내로 조사된 입자선이 정상 장기를 모두 투과하고 종양에 도달하는 순간 막대한 양의 방사선 에너지를 쏟아 암 세포만 죽이는 ‘브래그피크’ 원리를 적용한다. 이로 인해 정상부위나 주변 장기에 미치는 피해가 적고, 초기 암의 경우 1회 치료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세브란스의 중입자치료는 호흡 동조 치료가 적용되어 종양 위치의 변화를 반영한 정밀한 치료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투시검사 장치를 이용해 장기의 움직임과 신체의 호흡 주기를 추적하며, 기관지 내시경으로 금침을 삽입해 움직임 패턴을 읽어야 한다.
세브란스는 중입자치료와 전통 항암치료법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프로토콜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최근 미국 의료계에서는 초기 폐암 환자들이 방사선치료에 면역항암제를 추가할 경우 생존율이 20% 이상 증가한다는 보고가 나왔다. 이를 기반으로 세브란스는 중입자치료 병행요법 논의에 착수했다.
일본 방사선의학 종합연구소(QST)에 따르면, 중입자치료를 실시한 3cm 이하 초기 종양의 3년 국소제어율은 95% 이상이다. 이는 중입자치료의 성과를 알려주는 주요 지표로, 3cm 이상 종양의 경우 국소제어율은 80~90%에 달한다. 방사선폐렴 발생빈도도 중입자치료에서는 3% 미만으로 기존 방사선치료(10~20%)에 비해 눈에 띄게 낮다.
전문가들은 중입자치료가 기저질환이 있는 폐암 환자들에게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일본 군마대학에 따르면 간질성 폐질환을 동반한 환자가 중입자치료 이후 급성 악화 증상을 보인 사례는 없다. 또한, 방사선폐렴 발생빈도도 중입자치료를 받은 기저질환 환자의 경우 7.6%로 기존 방사선치료(30%)에 비해 낮다.
이번 세브란스의 폐암 중입자치료 도입은 폐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공하며, 치료 성과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