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니에슈카 마흐우나, 폴란드 콜부슈오바 마을의 농민 출신, 그녀는 귀족 출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귀족들을 속이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군대에서 북을 치는 아버지와 루보미르스키 궁전에서 하녀로 일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그녀의 어린 시절은 평범하게 지나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는 사회 계층의 구분을 넘어서려는 야망과 교육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헬레나 테클라 루보미르스카 공작의 부탁으로 한 신부에게 교육을 받으며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그 후에는 귀족들의 태도를 모방하는 법을 익혔다.
어머니가 사망한 후, 그녀는 고모들에 의해 키워지며 기르는 거위들을 돌보는 등 가혹한 농민 생활을 이어갔지만, 그녀의 목표는 항상 더 높은 곳에 있었다. 16세에 바르토시 자토르스키라는 궁정 코사크와 결혼했으나, 그의 학대에서 벗어나며 그녀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알렉산드라 조보로프스카’라는 가명을 쓰며, 오래전에 사라진 귀족 가문의 딸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을 새롭게 만들었다. 그녀는 생사를 넘나드는 어린 시절을 적의 군인에게서 숨으며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를 꾸며, 자신만의 미스터리한 과거를 만들어냈다.
1670년 경 크라쿠프와 바르샤바로 이동하며 고급 숙소를 빌리고 하인도 고용하여 자신의 허구의 신분을 보강했으며, 부유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매혹시킨 사람은 오스트리아 장교 콜라티였으며, 그와 결혼했으나 기존의 자토르스키와 결혼한 상태로 큰아내 상태에서 결혼을 감행했다. 이 결혼은 그를 그녀의 여정에서 새로운 고지로 이끌었으며, 비엔나에서 귀족들의 살롱에서 화려한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콜라티는 결국 그녀의 속임수를 알아차리고 그녀를 버렸다.
마흔을 훨씬 넘긴 나이에 그녀는 다시 폴란드로 돌아와 비에츠의 카스텔란인 스타니슬라우 루프니오프스키와 결혼했으며, 그와 함께 파리로 떠났다. 그러나 루프니오프스키가 갑자기 사망하자, 그녀는 그의 재산을 노리며 의심을 샀다. 그녀의 마지막 남편은 스타니슬라우 도마셰프스키, 루코프 스타로스타였으며, 그는 그녀에게 뇌물을 받고 그녀를 당국에 고발하면서 결국 그녀의 모든 거짓말은 드러났다.
루블린에서 열린 크라운 트리뷴널에서 아나 쉼베코바는 마흐우나를 사기 혐의로 고발했으며, 자토르스키는 그녀의 진짜 정체와 첫 번째 결혼에 대해 증언했다. 그 후 마르친 조보로프스키의 미망인은 그녀의 귀족 혈통을 부정하며, 마흔을 넘긴 그녀는 사기, 절도, 간통, 위증 등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며 처형을 맞이했다.
마흔 여덟 살, 1681년 7월 12일, 루블린에서 그녀는 사형을 당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속임수의 결과가 아니었다. 17세기 폴란드는 귀족 권력이 쇠퇴하고 사회적 검증이 느슨했던 시대였으며, 이로 인해 마흔과 같은 여성이 고유의 지혜와 미모로 귀족 사회를 속일 수 있었다. 그녀의 교육과 관찰은 그녀가 폴란드, 오스트리아, 프랑스에서 고위층을 속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이는 농민 출신 여성이 잠시나마 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마흔의 이야기는 단순히 복잡한 신분 상승의 사례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지성을 이용해 가부장적인 사회를 교묘하게 이용했으며, 여러 차례의 결혼을 통해 권력자들을 조종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역사와 연극 무대에서도 다뤄졌으며, 그녀의 이름은 결국 폴란드에서 최초의 악명 높은 셀럽으로 남게 되었다. 마흔의 삶은 혼란스럽고 불확실한 시대 속에서 계급과 성별이 얼마나 유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한 농민 소녀가 얼마나 쉽게 귀족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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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Agnieszka Machówna Fooled Polish Nobility with a False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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