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찰스 린드버그의 생후 20개월 된 아들인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1930년 6월 22일생)가 유괴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었다.
1932년 3월 1일 유모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들어오자 창문이 열려 있고 사다리 하나가 창문에 걸쳐진 채로 아이만 사라진 것. 부유한 명문가의 딸이자 아내인 앤 모로 린드버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아이가 유괴되자 전세계가 뒤집혔다. 당시 린드버그는 레전드급 인물이라서 미국에서도 너도 나도 린드버그의 아기를 찾겠다고 나섰다. 유괴범은 처음에는 편지로 5만 달러를 요구했으며 나중에는 몸값은 10만 달러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린드버그는 조용히 거절하고 암흑가 인물과 접촉하는 등 망신을 샀고 콘돈 박사와 협력하여 수사를 했다. 어느 날 협박장이 날아와서 그에게 큰 돈을 요구했고, 돈을 주고 싶으면 신문광고에 실으라는 대담한 범행을 했다.
협박장 사진.
결국 범인의 요구대로 당시 거액인 5만 달러를 아내랑 린드버그와 단 둘이서 복면을 쓴 범인에게 돈을 건네주었지만 아들은 결국 린드버그 집 주위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당연히 린드버그와 미국은 뒤집어졌고 다행히 지폐의 일련번호는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2년후인 1934년, 어느 은행에서 이 일련번호의 지폐가 발견되었다는 제보가 왔다. 다행스럽게도 은행에서 이 지폐를 사용한 남자를 수상히 여겨 차량번호를 기록해놔서 찾을 수 있었다.
(범인으로 잡힌 하우프트만)
범인은 독일출신의 목수인 브루노 리하르트 하우프트만(Bruno Richard Hauptmann/1899~1936)이였고 콘돈 박사가 들은 범인 목소리와 일치했으며 린드버그가 범인에게 준 지폐일련번호와 일치하는 돈다발이 발견되었다. 하우프트만은 이 돈이 자기에게는 독일로 이주한 이시도어 피슈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가 맡겼으며 지금은 죽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에서도 이 증언을 반복하는데 이 말도 안되는 증언은 배심원들의 괘씸죄를 사기에 충분했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첨언하자면, 이시도어 피슈 자체는 가공인물이 아닌 실존인물이며, 하우프트만이 증언한 대로 독일에서 사망한 것은 맞았다. 또한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여권을 신청한 날이 기묘하게도 린드버그 주니어의 시신이 발견된 1932년 5월 12일이었다. 하지만 이 이상의 의문점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피슈의 동생은 피슈에게 하우프트만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을 전혀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하우프트만은 위의 피슈가 돈을 자신에게 맡겼다는 주장 이외에도 피슈가 자신에게 이 돈을 맡겼지만, 피슈가 자신에게 수천 달러의 빚을 졌기 때문에 이 돈을 사용했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늘어놓으면서 스스로 자폭했다. 또한 피슈가 범인이라고 주장하기에는 여러 모로 무리가 많았는데, 분명 피슈가 여권을 신청한 것은 1932년 5월 12일이 맞지만, 독일로 출국한 것은 여권을 신청하고 1년 7개월 후인 1933년 12월이었다. 상식적으로도 범죄 도피를 위해 여권을 신청한 거라면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하우프트만의 아내는 남편이 무죄라고 1994년 95세로 죽을때까지 주장했지만 결국 하우프트만은 자백을 안 해도 결정적인 증거가 충분해서 사형당했다. 하우프트만은 죽는 순간까지도 독일어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사실 증거 일부는 검찰에서도 조작했었다고 했지만 범행에 쓰인 사다리는 목수가 아니면 만들 수 없었는데 조잡하긴해도 충분히 사다리로써 기능이 작동했다.
훗날 재감정했을 때 사다리는 범인이 근무하던 목재소의 목재와 일치하고 필적도 일치했다고 한다. 린드버그가 장난으로 아기를 숨겼는데 그만 죽자 난처해서 자작극을 했다는 음모론이 떠돌지만 증거가 너무 뚜렷하다. 하지만 음모론이란게 원체 생명력이 강해서 아직까지도 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유대인과 루스벨트 행정부에 대해 악의적인 음모론을 주장하고 퍼뜨리던 사람이 죽어서까지 자식의 죽음에 관한 음모론에 시달린다는게 아이러니하다.
이렇게 사건은 끝났지만 여러 수준낮은 기자들의 졸렬한 취재로 아내인 앤 모로우 린드버그(1906~2001)와 둘째 아들인 존(1932~ )까지 충격을 받은 것에 분노한 린드버그는 프랑스로 이주하여 카렐-린드버그 펌프를 만들고 몇년 뒤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의 진정한 수혜자는 그 유명한 존 에드거 후버였다. 후버 국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의회를 압박하여 연방수사국의 권한을 확대하는 6개 법률을 통과시켜서 막강한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90년대에 KBS2에서 일요특선 외화로 더빙방영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도 위에 상술한 아내 앤과 아들 존이 탄 차량을 막고 기레기들이 사진을 찍어서 놀란 존이 엉엉 우는 모습이 신문 1면에 실리자 린드버그는 그 신문을 구겨 내던지면서 "이 망할 기자놈들!"이라고 분노한다. 결국 인터뷰 자리에 나온 린드버그는 단단히 화를 내면서 내 가족을 더 슬프게 하는 건 빌어먹을 신문기자들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 영화에선 린드버그가 해외로 이민가자 미국인들이 미국이 영웅을 스스로 떠나게했다고 안타까워하는 게 나온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불후의 명작으로 불리는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집필하였다. 이 소설에서는 유괴범이 빼앗은 돈으로 신분세탁을 하고 부자 행세를 하고 살지만 아이의 유가족들이 결국 유괴범을 처단하여 정의를 실현한다는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