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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구미호뎐 1938 6화에 나온 천무영이 데려온 요괴 '장산범'의 실체와 의의

장산범은 부산광역시 장산 산속에서 출몰한다는, 호랑이를 닮은 괴생명체에 대한 도시전설의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요괴 전설들이 전근대에 만들어진 것과 달리, 장산범 괴담은 미국의 슬렌더맨과 일본의 쿠네쿠네처럼 인터넷 커뮤니티를 타고 유명해진 현대의 괴담(도시전설)이다. 같은 금수형 크립티드 전설로는 제보당의 괴수나 영국의 헬하운드, 조선의 중종 시기의 괴수 출현 소동이 유명하다.

이 크립티드가 주목받는 이유는 전통적인 한국의 요괴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콘셉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련된 디자인과 영적 능력이 조합되어 있으며, 테마도 자연을 주제로 하고 있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 현대인들의 경험담과 기억'을 바탕으로 창작된 것이라서 설정도 탄탄한 편이다.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민간설화 속의 요괴들은 대개 여러 갈래의 구전이 있다 보니 사람들에 따라 알고 있는 설정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장산범은 그 설정 또한 확실히 잡혀 있어 혼선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현대에 창조되는 가상 요괴의 돋보이는 특징 중 하나이다.

처음 이슈가 된 것은 잠밤기라는 사이트에서 미확인 생명체라는 이름으로 투고된 다른 투고자의 글 두 개를 비슷한 소재로 판단되어 같이 묶어서 게시하면서부터였다. 그렇게 큰 이슈는 되지 않았으나 유사한 목격 사례가 동시에 올라오면서 주목을 받았고 몇몇 목격 사례가 올라오면서 스레딕 오컬트판에서 목격사례를 수집하면서 스레가 흥하기 시작해 40건에 가까운 제보와 추측성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이후 여러 스레더들이 인증을 위해 탐사를 추진한다고 밝혔으며 해외의 신비동물학자에게 관련 메일을 보내는 등 장산범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노력이 얼마간 이루어졌다.그러나 범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설이 올라온 이후에는 이 움직임은 잦아들었고 이후 스레딕 오컬트판은 크립티드나 UMA는 오컬트가 아니라 괴담이라며 강제로 스레를 묻어버렸다고 한다.

모습과 특징

부산 지역의 민담을 채록해 부산광역시청에서 발간한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일절 수록되어 있지 않다. 민속학계 교수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과거사에 존재하지 않는 현대의 도시전설이란 반응. 1984년 통문관에서 발행된 민속학자 최상수 교수가 쓴 "한국민간전설집"의 모든 경상도 민간전설 목록을 뒤져봐도 장산범 전설은 없다. 이 책은 한국 민속학의 개척자로서 50년간 북한을 포함한 8도의 모든 전설을 직접 채집, 분류, 연구한 민속학 교수의 저서이며, 일제강점기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거의 모든 민간전설을 총람한 책이니만큼, 이 책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면 적어도 1984년도 이전에는 이런 전설은 없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이 괴생물체가 주로 나타난다는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장산 일대는 대한민국 육군 53사단 사령부와 여단 그리고 다수의 사단 직할대와 n개의 소규모 공군 지원대, 사단 유격장은 물론 정상에는 대한민국 공군 호크포대 기지까지 주둔 중이며 국군부산병원도 있는, 최후방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중무장 군사지역이다. 해당 부대 장병들 사이에서도 아무런 목격담이 없는데다가 사람 죽이는 괴생물체가 있어봤자 지뢰 밟고 오래 전에 죽었거나 군에서 처리한 지 오래일 것이다. 90년대 초반까지 장산에는 무장공비 및 후방으로 침투할 북한 특작부대를 막기 위해서 지뢰가 상당히 깔려 있었다. 98년도 무렵부터 신도시 조성 등으로 대대적으로 지뢰가 제거되고 등산로가 개척되기 전까진 입산이 제한되는 지뢰밭이었다. 당장 뉴스를 검색해보면 2014년도까지도 산 정상부는 말 그대로 지뢰밭이어서 여전히 지뢰 제거 작업 중이다. 지뢰가 많이 제거된 현재 장산은 등산객들도 꽤 많은데다 장산 바로 아래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인근 주민들이 산책도 할만큼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산이다.

그리고 장산이라는 산에 있는 절만 해도 폭포사, 장산사, 원각사, 용수사, 해월사, 무불사, 보경사, 장성사 등이 있다. 이는 아예 산에 상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인데 장산범이 있다면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리가 없으며 살더라도 대비책을 갖다놨을 것이다. 게다가 1964년에는 독립운동가 이정희 여사가 남편 강근호 선생의 사망 후에 군인들과 함께 장산개척단을 조직하여 장산마을을 설립하여 아예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만약 장산범이 있었다면 이들의 증언이 없을 수가 없다.


맹수설

장산은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산으로, 위에서 광안대교가 내려다 보이고 해운대 해수욕장이 인근에 위치해 있다. 심지어 야경 포인트로도 알려져있고 터널도 뚫려있는 산이다. 평지가 거의 없는 부산의 특성상, 장산에 이런 대형 동물이 산다고 하면 부산은 야생동물의 정글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장산은 평범한 호랑이도 잘 안 나타나던 최남단의 낮은 구릉 지대다. 남부지역에서 목격된 범과 관련된 일화는 주로 지리산과 가야산 일대에서 전해지며, 목격담 중에서도 소백산맥(경북 문경-영주시) 일대가 제일 많고 항구도시인 부산에서는 드물다. 지리산과 가야산 정도로 크고 높은 산에서나 목격되는 대형 고양잇과 맹수가 장산 같은 곳에서 서식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고양이과 맹수설


한반도의 호랑이, 표범 등과 함께 한반도의 대표적인 포식성 맹수였으나 일제의 해수구제사업으로 그 규모가 급감하고 도시화의 진행으로 멸종 단계에 이른 것이라는 것이 있다. 즉, 우리가 알고있는 '범'에 관련된 설화는 호랑이 뿐 아니라 이 장산범의 일화들도 더해졌다는 것. 경상북도 성주군 가야산에서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아직도 호랑이가 산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으며, 문제의 장산에선 1992년 호랑이가 출몰했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한 적이 있으나 실제 호랑이를 찾는 데는 실패한 소동이 있었다.
경주 지역에서는 넓적범, 경주 산내 지역에서 토박이말로 넙덕바리라는 존재에 대한 설화가 있는데 묘사를 들어보면 장산범과 굉장히 흡사하다. 넓적하게 생기고 굉장히 빠르다고 한다. 다만 넓적범이라는것이 단순히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민담인지 진짜로 목격된 것인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당장 호랑이의 별명 중 하나로 비호(飛虎) 즉 말 그대로 나는 것 같이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선비들 기록에 마치 날개 달린 것처럼 빨랐다, 하룻밤에 백리(과장해서 천리)를 달렸다며 호랑이에 물려갔다가 기지나 운을 통해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이 다수 실려있다.이 묘사로 추정해본다면 남한에서 서식한게 맞는지 논란 여부가 있는 스라소니와 굉장히 흡사하기도 하다.


'범'이란 단어는 아니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말 중 새끼호랑이를 일컫는 개호주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게 지역에 따라서 경남쪽에선 개오지, 의성쪽에선 개호재비, 경북지역에선 납닥바리, 강원도에선 갈가지, 개갈가지로 불리는데 그밖에 개호자 등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이나 낚시꾼들 중에서는 호랑이, 표범, 삵이 아닌 짐승으로 기억하는 분들도 있다. 역시나 공통점으로 사람 목소리를 내서 홀린다, 사람을 공격할 때 뒷발로 흙을 퍼부어서 정신 못차리게 공격한다 같은 공통적인 묘사가 있다. 이러한 묘사들때문에 스라소니 아니냐는 얘기도 있지만 스라소니의 경우, 남한에서 못생긴 호랑이새끼라 하여 개호주&개호자등으로 불렸다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발견된 기록이 없어 이에 여러 의견들이 갈리는 편이다. 고연령층이 많은 낚시 커뮤니티나 한국의 호랑이 커뮤니티 및 한국의 맹수 커뮤니티에서는 장산범이 화제가 되기전부터 정체 모를 맹수의 썰이 꽤 있었다. 요괴설에 대해선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반응이 많지만 호랑이, 표범등의 맹수를 주제로 다루는 커뮤니티에서는 진지하게 "장산범은 맹수일지도 모른다."같은 주제에 대해선 그럴 법 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각 지역마다 새끼호랑이, 표범, 스라소니를 묘사하는 듯한 사투리도 있고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 호랑이 행세를 하는 짐승새끼가 있었다라고 기억하는 노인도 있기 때문이다.


의의와 한계

장산범은 현대에 창작된 괴담이며, 일종의 도시전설로서 민속 문화로서의 가치는 없다. '사람을 꾀었다', '사람 목소리를 내 홀렸다'는 내용이 이야기 구조상 독특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이는 기존의 호랑이(범)와 관련해서 존재했던 설화이다. 장산범의 경우 호랑이 옆에 붙어 사람흉내를 내 해코지하게 만든다는 창귀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 세계 곳곳을 가도 맨티코어같이 사람을 흉내내는 괴수 설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산범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장산범 이야기가 웹툰, 영화로도 제작된 것을 보아 어느 정도의 문화적 기여는 인정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장산범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게 되면서 '한국 요괴'를 창작물에 활용할 사람들이 예로부터 내려오던 이야기 대신 널리 알려진 장산범을 먼저 쓰게되는 큰 단점이 존재한다. 대중에게 익숙한 소재를 먼저 택하게 되는 필연적인 부작용이다. 장산범이 민속학 발전에 오히려 저해되는 요인이 여기에 있다.

인터넷발 괴담인 장산범에서 긍정적인 점을 찾고자 한다면, 명맥이 끊어졌다고 생각되었던 '토종 한국 민담'이 대중들 사이에서 창작되고 재조명되었다는 점이 있다. 개개인이 점점 분리되어가는 사회에서, 현대의 삭막함이나 인간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형상화한 민담, 즉 어반 판타지스러운 내용의 민담(인신매매 괴담 등)은 줄곧 창작되었으나 이와는 반대로 토속적이고 자연적인 내용의 민담이 차지하는 영역은 기껏해야 1970년대에서 90년대, 2천년대 초반까지 유명했던 전설의 고향 시리즈 이후로는 쇠퇴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된 대중 문화도 맥을 잇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장산범의 등장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연의 두려움을 형상화한 민간 전승의 구전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장산범 괴담이 한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회자된다면 미래에는 민속학 연구에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재야에서는 드물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장산범이 가지는 한계 역시 명확하다. 우선 장산범의 명칭에는 '장산'이라는 지역 명칭이 들어가 있지만 장산범과 장산의 관계는 희미하며, 심지어는 배경을 한국이 아닌 중국이나 일본의 어느 도시로 바꾸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토속적인 요소가 부족하다. 이는 장산범 괴담 자체가 전통적인 괴담이 아니라 이미 서구화와 기계화가 충분히 진행된 현대사회의 도시전설이기 때문이다. 민화나 민속담이 가지는 가장 큰 의의는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나 인터넷에서 단편적인 괴담 형태로 제작된 장산범의 경우 해운대 일대의 지역적 특색이나 토속적 요소를 담아내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국내외의 수많은 요괴 이야기나 괴담은 후손에게 전승되면서 해당 지역의 문화를 녹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 장산범 괴담은 여러가지 매체에서 상업적 콘텐츠로 활용되기는 하였으나, '장산범'에 대한 캐릭터성을 만드는 데에 실제 장산 지역의 문화적 요소는 첨가되지 않았다. 비단 장산범은 예로부터 전설(傳說)된 이야기도 아니며, 그 정체성이 형성된 역사[11]를 따져보면 목 없는 라이더 보다도 짧다. 장산범의 근거가 된 '짐승이 홀려간다'는 민담은 장산 뿐만 아니라 전역에 널려 있다. 이를 제외하고 장산범만 따지고 본다면,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산을 소재지로 한 한국적' 요괴라는 개성은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장산범을 민담으로써 구술한 채록이 전무한 현 상황에서 '인터넷 시대에 지역을 따지냐'는 주장은 장산범 괴담을 유희거리로만 향유하는 생각에서 도출된 결론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요괴담에 어떠한 고찰도 없으며 오히려 여러 채록과 기록이 존재하는 한국 요괴를 문화컨텐츠로써 활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한다면 장산범은 한국 요괴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자연의 공포를 잇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 도시 괴담이지만 학술적으로 등재될 만큼의 한국 토속 요괴로서의 가치는 없다. 이는 장산범 이야기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며, '한국 민속' 전체를 보았을 때 도출되는 결론일 뿐이다.

2023년 드라마 구미호뎐 1938 6화에서 천무영이 데려온 요괴로 장산범이 등장한다. 해당 드라마에 나오는 요괴는 조선땅에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다는 설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