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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회.정치.역사.인물

법륜스님 조계종 승적 문제

법륜스님은 비록 도문 스님을 만나 출가를 시작했고 비구계를 받았으나, 정작 스승이 조계종에 소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적 및 소속종단이 없어서 이 부분에서 논란이 일었났다.

출가 후, 20년을 승려가 아닌 재가법사로서 활동하는데 90년 말에 스승 도문이 "인제 들어와서 활동을 해라." 하였다. 법륜이 도문 스님에게 "스님, 도에 무슨 안팎이 있습니까?" 묻자, "도에는 안팎이 없지." 답했다. 그러자 법륜이 묻기를 "그런데 왜 자꾸 안으로 들어오라고 그러십니까?" 도문 스님이 "네가 밖을 고집하니까 안이 생기지."라며 응했다. 법륜은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안팎이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밖을 고집하는 자신을 보았다. 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삭발을 하고, 도문은 사미계는 옛날에 받은 걸로 하고, 계율에 대해서만 다시 설하고 비구계와 법사계를 수계하고 전법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가 91년 1월이었다.

91년에 사미계를 받으려 했지만 단일 수계가 없던 해여서 사미계를 받지 못하고, 도문이 승적문제에 대해서 '네가 20년 밖에서 나가 살면서 장가를 간 것도 아니고 딴 짓 한 것도 아니고 불교 활동했으니까 승적문제는 내가 한 번 의논을 해보겠다' 얘기를 하셨기 때문에 당장 수속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다 단일수계를 지나쳐버리고 계를 못 받게 됐다.

조계종에선 법륜이 단일계단에 참여를 안 했기에 승려로 인정을 할 수 없다기에, 법륜은 승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5년 8월 25일부터 진행되는 행자교육원 입방원서를 다시 썼다. 그런데 그 해 6월부터 '북한돕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두 달간에 걸쳐 마무리하고, 8월 15일날 회향한 후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총무원장 스님, 강원용 목사와 함께 대통령 면담신청 날짜가 8월 29일로 잡혔다.

당시, 정토회의 책임자들은 합동 수계에 대한 안건을 대중공사(숙의형 전원 토의)에 붙였다. 합동 수계에 간다면 한창 진행 중인 북한 돕기 운동에 차질이 갈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대중공사 결과, 법륜 스님이 수계 교육을 가서는 안 된다는 결정이 나왔고 법륜은 그 결정을 따랐고 현재 승려증 없는 승려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소속종단 및 승적이 없는 법륜과 정토회에 대해 각 종단측 인물들 및 신도들에게서 사이비 취급을 받으면서 불교 종단들과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구족계를 여법하게 수계하지 못해도 과연 비구로 인정할 수 있을까? 석가모니가 정한 율에 따르면 비구가 되려면 전계법사를 포함하여 최소한 적법한 비구 10명이 모여 구족계를 전수해주어야 한다. 도저히 적법한 비구 10명이 모일 수 없는 상황이라도 최소한 4명은 모여야 한다. 최소한 비구 4명은 모여야 비로소 최소한의 '승가'가 되기 때문이다. 사미계도 정식으로 받은 게 아니고, 구족계도 스승 도문 한 명에게서 받았다면, 대한불교조계종의 규정 이전에 석가모니가 정한 율의 관점에서도 처음부터 유효한 수계를 한 것이 아니다.